고려인 전쟁 포로분들이(pow-prisoner of war)부르신 100년전 '아라랑'



100년 전 전쟁에 끌려간 고려인 2세가 부른 '아리랑'과 이를 녹음한 레코드판이 공개됐다.

4일 경상북도 문경시 옛길박물관에서 시작한 '길 위의 노래, 고개의 노래 아리랑'전(국립민속박물관과 공동기획)에는 97년 전인 1917년 두 명의 한국인이 각각 부른 두가지 아리랑과 이를 수록한 에스피(SP)판 2장이 등장했다. 아리랑연구가 김연갑씨가 올 2월 독일 베를린 훔볼트 대학 부속 자료관인 라우트 아카이브에서 찾아낸 자료로, 이틀 동안 일반에 공개된 뒤 독일로 돌아갈 예정이다.

아리랑을 부른 한국인은 1차 세계대전 독-러 전투에 러시아 병사로 참전한 고려인 2세인 김 그리고리(한국이름 김홍준, 당시나이 27살)와 안 스테판(한국이름 미상, 당시 나이 29살)으로, 이들은 독일군 포로가 되어 프로이센 포로수용소에 수용 중인 전쟁포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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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 Kwang-On1 year ago



in reply to hong0058







마이웨이 는 1944년 6월6일 불란서 Normandy 에서 미군 포로가 된 독일군 소속의 한국인들 이야기 이고 여기서 다룬 아리랑 이야기는 1917년 일차대전 중의 이야기 임니다. 27년의 시간차는 있으나 똑 같이 애절 하고 슬픈 이야기 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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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까례예쯔(Кореецы)라고 해야 한다.[1] 그러니까 러시아에서는 고려인을 카레이스키라고 부르지 ...



러시아 고려인 의 역사· 1860년 연해주 포세트 지역 한인 13가구 최초 기록

· 1863년 한인 연해주 이주 시작

· 1867년 185가구 999명

· 1869년 한반도 북녘 대기근으로 이주 급증. 1만 명 급증

· 1902년 한인 이민자 수 32,380명

· 1905년 을사 보호 조약 이후 의병 기지화

· 1908년 의병 건수 1,451건 참가 인원 6만 9천 8백여 명. 연해주 총독의 해로 의병 활동 만주 이동

· 1910년 경술국치 후 한인 이민 급증

· 1914년 교민 수 6만 3천 명으로 신한촌 건설 (블라디보스토크)

· 1918년 4월 일본군 연해주 점령

· 1922년 10월 일본군 연해주 철수, 친일 거류 민단 5천 명과 함께 귀국

· 1923년 재소 한인 공식 10여만 명 거주. 실지 25만 명 이상 거주

· 1932년 연해주 한인 학교 380개. 잡지 등 6종, 신문 7종,

· 1937년 9월 21일 -11월 15일.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한인들 전원 중앙아시아(6천㎞)

강제 이주당함.고려인의 숨결과 경상남도,



밀양(密陽)은 경상남도(慶尙南道) 북동부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원래 삼한시대( 三韓時代)에 변한(弁 ...



『고려사』는 태조 원년(1392년) 왕명에 의해 방대한 재원과 인력을 들여 완성했으나 고려사의 내용에 대해서 당시 지배층의 뜨거운 반응 때문에 곧장 출간되지 못하고 편법으로 『고려사 절요』를 편찬했다가 문종 원년(1451년)에 완성·출간되었다. 그 제작 과정이 무려 60년이나 걸렸다. 이로써『고려사』편찬은 정치투쟁사이었음을 알 수 있다.삼국사기는 고려 광종 때 쓴 삼국사(구삼국사)를 김부식이 새롭게 정리 편찬한 것이다. 사기는 당대의 사람이 쓴 것이 아니고 후대의 사람이 쓴 것이므로 왜곡의 가능성이 있다. 역사서를 새로 쓰는 것은 현재 우리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김부식과 일연 스님의 대비, 떠돌이 중으로 알았던 일연은 왕희지가 비석의 글을 쓸 만큼 권력자의 비호를 업은 불교계의 최고 강자였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 삼국유사다. 사기의 기술(記述) 방법은 편전체와 기전체가 있는데 김부식은 주로 기전체를 사용했다.  "고려인이 새롭게 재구한 역사, 『삼국사기』고려인Korean Diaspora Khazakhstan to Russia to Siberia 서울 고겨인 민긍호[ 閔肯鎬, 1865~1908] - 조선 말기 의병장

민긍호[ 閔肯鎬, 1865~1908] - 조선 말기 의병장



강림촌(講林村)



일본서기'(日本書紀) 등에 자세히 적혀 있다... 나 자신과 관련해서는 간무(桓武) 천왕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후손이라고 '속일본기'에 적혀 있어 한국과의 인연을 느낀다."(지난해 12월23일 아키히토 일본 천왕)



'천황도래설'을 지지하는 일본 학자들 사이에서는 일본을 건국한 천황이 누구인지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가야계라고 보는 10대 스진 천황, 다른 하나가 백제계인 15대 오진 천황인데, 이시와타리씨는 백제 개로왕의 동생으로 왜국으로 건너온 곤지가 곧 오진 천황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오사카부의 하비키노시에는 곤지왕자를 제신으로 모시는 '곤지왕 신사'(현 아스카베 신사)가 남아 있다.



한일 고대관계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3세기 초 등장한 히미코 여왕이다. 90년대 일본에 히미코 열풍을 몰고 온 이 최초의 여왕은 백제가 아닌 가야국과 관계가 깊은 것으로 추정한다. 한국에는 비미호(卑彌呼)로 알려진 히미코 여왕에 대한 기록은 중국 정사인 '삼국지' 중 위지동이전에 나타난다. 이 문제를 깊이 연구한 고(故) 이종기씨는 '춤추는 신녀'라는 책에서 일본 고대왕국의 비미호 여왕이 가락국 수로왕의 딸 묘견공주라고 주장했다.